주 52시간 제도가 중소기업에 미칠 영향은?

부정적 여론이 다수·기업들 대다수 준비 안 된 상황…정부도 "계도기간 부여할 것" "중소기업 도전의지 약화시키고, 기득권 가진 대기업 시장 지배력만 강화시킬 우려"

2019-11-19     곽성규 기자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제가 내년 전면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미칠 영향에 대해 경영계 여론의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대부분 주 52시간제에 대한 대비가 잘 돼 있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도 결국 이러한 '근로제한' 정책이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들의 도전의지를 약화시키고, 기득권 가진 대기업 시장 지배력만 강화시킬 것이란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계도기간'을 부여하는 등 유예기간을 주는 보완책을 고려 중이다. 

 

먼저 금융업계에서 주 52시간제에 대해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데 노동 투입량만 급격하게 줄이게 돼 성장 둔화세가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9일 IB업계에 따르면 해외 투자자들은 기획재정부를 방문했다. 이들은 한국 정부의 주 52시간제 보완대책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주 52시간제는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 정부에 묻는 단골 메뉴 중 하나”라며 “일부 투자자는 ‘한국이 가진 자원이라곤 열심히 일하는 인적 자원뿐인데 일을 조금만 하도록 강제한 이유가 도대체 뭐냐"고 항의했다고 밝혔다. 

 

최근 ‘한국의 성장률 둔화’란 제목의  한 금융회사의 비공개 보고서에서는 “미·중 무역분쟁과 반도체 약세 등으로 어려운 시기에 한국 정부가 주 52시간제를 밀어붙여 성장률 하락을 부추긴 건 특별히 아픈 대목”이라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확장적 재정정책은 성장률 제고에 도움은 되겠지만 공짜가 아닌 만큼 재정적자 확대만 초래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다른 금융사의 비공개 보고서에서도 “내년부터 중소기업 채용 인력의 18%가량이 주 52시간제 적용을 받을 것”이라며 “엄격하게 설계된 주 52시간제가 총생산시간을 감소시켜 내년 성장률을 깎아내릴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한 외국계 금융기관은 최근 2년간 한국의 노동공급량을 끌어내린 주범으로 주 52시간제를 지목했다. 주당 36시간 이상 근로자 비중이 2016년 1~8월 80.0%에서 올해 1~8월 77.9%로 소폭 줄어든 데 비해 주로 정규직인 45시간 이상 근로자 비중은 같은 기간 45.1%에서 37.4%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외국계 금융기관 관계자는 “최근 2년간 한국 근로자의 근무시간은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많이 줄었다”며 “노동생산성은 그대로인데 노동공급량만 줄이면 생산량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대기업보다 더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중소기업계도 주52시간 본격 시행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팽배한 상황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10월 내년부터 주52시간제 적용대상이 되는 50인 이상~300인 미만 500개 사업장에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중소기업 인식조사’를 실시해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58.4%가 주 52시간 시행시기 유예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대상기업 10곳 중 약 6곳이 아직 시행준비가 덜 됐다.

조사에서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준비 상태에 대해 ‘준비 중’이라는 기업은 58.4%였다. 하지만, ‘준비할 여건이 안 됨’이라는 응답이 7.4%를 차지했고, ‘준비 중’이라 응답한 업체가 연말까지 준비완료가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시간불충분’이 51.7%로 나타났다. 주 52시간 시행을 위해 개선이 필요한 제도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및 요건 개선’(69.7%)이 가장 높았으며,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및 요건 개선’(24.2%), ‘재량 근로시간제 대상 업무 확대’(12.1%) 순으로 나타났다.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이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근로자 추가 고용으로 인건비 상승’(70.4%)을 가장 많이 예상했다. 다음으로 ‘구인난 등 인력 부족’(34.4%), ‘조업일수 단축 및 생산차질’(33.8%) 등의 순으로 답했다. 주 52시간 시행을 위한 ‘인가 연장근로’ 허용사유 완화 필요성에 대해서는 ‘필요하다’에 78.8%의 높은 응답률을 보였고, 반면 ‘필요하지 않다’는 21.2%로 적었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탄력적·선택적 근로시간제 등 유연근무제의 보완도 시급하지만, 근로시간 감소로 인한 근로자의 임금하락과 유연근무제로 근로시간 단축에 대처하기 어려운 중소기업도 많은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년 제도를 본격 시행하기로 한 정부도 중소기업 대상의 주52시간제에 계도기간 충분히 부여하기로 하는 등의 보완책을 진지하고 고려하고 있는 분위기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8일 브리핑을 열어 `주 52시간제 입법 관련 정부 보완 대책 추진 방향`을 발표했다. 이날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내년 1월부터 주 52시간제 시행에 들어가는 중소기업에 대해 법정 노동시간 위반의 처벌을 유예하는 계도기간을 부여하고, 이 제도의 예외를 허용하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에 기업의 `경영상 사유`도 포함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또 "탄력근로제 개선 등 입법이 안 될 경우 주 52시간제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현장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추진하겠다"며 "중소기업이 주 52시간제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전체 50~299인 기업에 충분한 계도기간을 부여하겠다"고 말했다. 또 "시행규칙 개정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를 최대한 확대하겠다"며 "현재 시행규칙에서 `재난 및 이에 준하는 사고 발생시`에만 특별연장근로 인가를 허용하고 있으나 일시적인 업무량 급증 등 경영상 사유에 대해서도 특별연장근로를 활용할 수 있도록 최대한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일정기간 유예하더라도, 결국 이러한 근로시간 제약이 스타트업을 포함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기존 기득권을 가진 대기업의 시장 지배력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중소기업 경영컨설팅 전문업체 가인지캠퍼스의 김경민 대표는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시장 지배력이 약하다"며 "고객과 시장의 요청에 따라 집중해야 하고, 납기를 맞추기 위해 때로는 오버타임이 필요하다. 게다가 업무 개선을 위한 활동을 통해 성장 동력을 갖취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상황이 이런데 기업 경쟁력에 대한 고려 없이 일률적이고 징벌적인 근로시간 제약은 자칫 중소기업의 도전의지를 약화 시키고, 결국 기득권을 가진 대기업의 시장 지배력만 강화시킬 우려가 있다"며 "주 52시간 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숙려 없이 진행되면 곤란하다"고 전했다. 이어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창업자들과 동료들이 신나게 일에 몰입할 수 있도록 우리나라 기업 생태계에 대한 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