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 독서법] 인생 후반기 책 읽기 (버릴 것과 남길 것)

"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면 그 책은 유통기한이 지난 것이다" 전문가 칼럼 : 최에스더 미러리스트 대표 소개책 : 죽음을 이기는 독서

2020-01-30     최에스더 객원기자

독서를 시작하는 가장 좋은 방법 스타트독서법, 간단하게 'S.T.A.R.T 독서법' : S는 Subject(주제읽기-핵심), T는 Thinking(생각쓰기) A는 Action(읽고서 삶과 업무에 적용) R은 Rereading(재독하기) T는Text(창작하기)을 의미합니다. START는 시작이란 의미로, 독서를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한발을 뗄 수 있도록 구체화 해 주는 실용적 독서법 입니다. 

책을 정리한 이유?

2019년 여름 어느 날, 병원 문을 나서는 내 손에는 이것만 먹어도 배부르겠다 싶은 수많은 약과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진료비 영수증이 들려 있었다. 몇 달간 쓴 병원비를 계산하니 한 숨이 절로 나왔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일을 줄였다. 일을 줄이는 만큼 매달 나가는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 사무실을 정리했다. 사무실을 정리하려고 보니 가장 많은 짐을 차지하는 것은 책이었다. 일하기 위해 필요한 공간이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책이 살기 위한 공간이었다. 책이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그동안 열심히 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책 덕분에 새로운 직업도 얻었고 돈도 벌었지만, 주인인 내가 필요 없는 공간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자명했다. 사람이 위기의 순간에 놓이면 그동안 살아 왔던 삶의 방식에 의문을 품기 마련이다. 의문은 당연한 것들을 낯설게 볼 수 있게 한다. 당연한 것들을 낯설게 보기 시작하면 늘 하던 선택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책을 정리하는 방법을 다각도로 모색했다. 헌 책방에 파는 방법, 지인들에게 선물 하는 방법, 도서를 공유하고 비용을 받는 방법 등, 그 많은 방법 중에 내가 선택한 것은 종이책을 디지털화 하는 것이었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약2200권의 종이책을 북스캐너를 이용해 디지털화 했다. 대략 4개월이 걸렸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은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힘은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고자 했던 간절함이 한몫했다. 흔히들 하는 말 중에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고 한다. 반대로 살던 방식을 고수하면 죽을 것 같았다. 삶의 변화가 절실히 필요했다.

 

벽의 한 면을 가득 채웠던 책과 책장을 정리하자 텅 빈 공간이 생겼다. 왠지 모를 희열이 느껴졌다. 단지 비웠을 뿐인데 무언가 해낸 것 같은 감정이었다. 차라리 스캔을 하는 것보다 파는 것이 쉬운 방법이었지만 삶에 대한 애착 이상으로 내가 소유한 책에 대한 애착이 강렬했다.

 

책의 육체인 종이는 버렸지만 책의 영혼인 컨텐츠만은 버릴 수 없었다!

비록 책의 육체인 종이는 버렸지만 책의 영혼인 컨텐츠만은 버릴 수 없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아프다면서 그 일을 할 수 있었냐고. 내가 평소 하는 일의 대부분은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육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을 정리하는 것은 정신을 쉴 수 있는 쉼이었다. 자르고 스캔하고, 자르고 스캔하고를 반복하며 그동안 내가 사모아 놓은 책들을 나만의 기준으로 분류해 디지털로 정리했다.

 

한 권 한 권 손으로 만지고, 책의 제목을 다시 읽으며 지난날들의 나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책 속에 나의 꿈, 나의 열정, 나의 호기심, 나의 슬픔, 나의 욕망, 나의 후회들이 보였다. 책은 나의 정신의 물질화였다. 모든 책을 디지털화 한 것은 아니다. 책을 한 권씩 정리하다보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보다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책은 정리해서 선물했다. 또 일부는 중고서점에 판매했고 150권 남짓하게는 종이책 그대로 남겨 두었다.

 

나의 꿈 리스트에는 자녀에게 만 권의 책을 물려주겠다는 꿈이 있었는데 이 꿈도 책과 함께 정리했다. 자녀에게 실물 책을 남겨주는 것보다 스스로 필요한 책을 고를 수 있는 안목을 물려주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내 나름의 책에 대한 철학이 있는데 ‘빌려 읽지 않고, 빌려주지 않는다.’ 빌려 읽을 정도 책이면 바로 사버리고, 빌려 준 책은 돌아오지 않는 다는 것을 알기에 절판된 책이 아니라면 빌려주는 대신 하나 더 구매해서 선물로 준다.

책이 2000권이 넘고서 부터는 도서관을 잘 가지 않았는데 책을 정리한 후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다. 할 일 없이 어슬렁 도서관숲 책나무 사이로 걷다가 멈춰 책 한권을 집었다. 책의 제목은 <죽음을 이기는 독서>였다. 제목이 하도 의미심장하여 읽어보니 백혈병 진단을 받은 작가가 죽음을 앞두고 읽었던 책들에 관한 에세이였다.

 

비록 나의 육체적인 아픔이 그에 병에 비견할 만 하지는 않았지만 현재 나의 상황과 맞물려 공감되는 글이었다. 작가 클라이브 케임스는 자신이 손에 든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말했다. ‘불이 언제 꺼질지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다면, 불이 꺼질 때까지 책을 읽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가 얼마나 책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는 런던에 있던 작업실을 정리하고 가족이 있는 케임브리지로 이사를 갔다. 가지고 있던 책의 절반가량을 정리하고 남은 책들로 자신의 서재를 꾸몄다. 나 역시 꾀 많은 책을 정리했지만 책을 정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책을 정리한다는 것은 삶을 정리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더 이상 예전처럼 많은 책을 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워낙 가지고 있던 책도 많았고, 아픈 마당에 더 이상 예전처럼 많은 책을 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비움으로써 깨닫는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왠지 성숙한 행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책을 정리했기에 나는 예전보다 책을 덜 구매할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건강을 회복하고 도서 구매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나의 호기심이 다시 발동하기 시작하자 책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단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전자책 구매 비중이 높아졌다.

 

클라이브 제임스 역시 책을 정리한 후 주변 사람들에게 두 번 다시 책을 사들일 없을 거라 맹세했지만 책을 읽고 싶은 욕구와 함께 책을 사고 싶은 욕구도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는 책을 다시 읽었고, 다시 책을 구매했다.

클라이브 제임스가 말하기를 ‘가장 어른스러운 일, 즉 사라져야 할 시간이 가까워진다고 해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은 아이 같은 충동까지 반드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표현처럼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내 안의 호기심의 해소를 위해서는 여전히 책이 필요하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책을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누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도 내가 삶의 위기에 깨달은 것이 있다면 아무 책이나 읽기에는 내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이다. 사람과의 인연처럼 책을 만난다는 것은 인연을 만드는 것이다. 나는 약간의 호기심만 있어도 크게 고민하지 않고 책을 구매했다. 책과의 인연을 쉽고 빠르게 맺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신중해 지려고 한다.

 

책을 사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정리하는 것이라는 것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물들을 냉장고에서 정리하듯이, 내 삶에서 유통기한이 다 된 책들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씩 되돌아보는 것이 좋다. 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면 그 책은 유통기한이 지난 것이다.


 

 

필진 : 최에스더 미러리스트 대표

-START 독서법 개발

-기업독서경영 100회 이상 진행

-다수의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 기획 및 강의 제작

-출판기획전문 (주)엔터스코리아 콜라보 책 쓰기 강의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