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문제를 비즈니스로 해결하는 기업, 청밀
기업, 사례를 만나다: 사회적기업 청밀
아침 저녁으로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10월의 어느날, 기자는 가락시장에 위치한 ‘사회적 기업 청밀’을 방문하였다. 사무실 분위기는 아주 밝고 세련되었다. 한편에서는 여러 명의 젊은 직원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었고, 한편에서는 직원들이 자리에 앉아 업무에 몰입하는 모습이었다.
기자는 양창국 대표를 만나 가장 먼저 ‘청밀’의 의미를 물어 보았다. 양 대표는 대답했다. “청밀이란 푸른 밀을 뜻합니다. 시골에서 들판에 나가면 푸른 밀밭을 볼 수 있지요. 우리 회사가 가지고 있는 좋은 가치와 의미가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고 의도로 회사명을 지었습니다.”
“대표님, 청밀 앞에 항상 ‘사회적 기업’이란 말이 항상 붙어 나오네요. 어떤 의미인지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양 대표는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준을 통과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전체 직원의 30% 이상을 노인과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고용해야 하구요. 회사 이익의 70% 이상을 사회에 환원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쉽지 않은 기준들이지요. 게다가 취약계층의 직원이 취업하더라도 오랫동안 회사를 다니기도 힘듭니다. 청밀의 경우 취약계층의 평균 근속 연수가 5-6년 정도 됩니다. 상당히 안정적이지요. 청밀은 2011년에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 받았구요. 2016년도에는 서울시에서 사회적경제 우수기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현재 직원 40여 명, 작년 매출액 120억원으로 사회적 기업 가운데에서도 상당히 큰 규모에 해당합니다.”라고 답했다.
이어서 양 대표는 이 기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했다. 2008년도 즈음이었다. 양 대표는 판교에서 식품공장을 운영하며 현대백화점에서 매장 3개를 운영했고, 아내는 약국을 운영하던 때였다. 비즈니스가 너무나도 잘 되어 조만간 압구정에 빌딩 사겠구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는 돈 많이 벌어 조기 은퇴해서 재미있게 살고 싶었다.
그런 생각으로 살던 어느 날, 밀알복지재단에서 식품 공장에 장애인을 고용하도록 요청하였다. 양 대표는 베이커리 공장을 세우면 장애인들을 고용하여도 충분히 운영이 가능하리라는 판단을 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조건들이 맞지 않아 포기하려 하였다.
그 소식을 들은 발달장애인들의 부모들이 양 대표를 찾아 왔다. 부모들은 양 대표를 붙들고 “내 아이가 나보다 하루만 먼저 죽었으면 좋겠다. 내가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았으면 원이 없겠다. 내가 먼저 죽으면 내 새끼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르겠다.”며 울면서 호소하였다. 어떤 사람은 발달 장애인이 있는 집에 불이 났는데 혼자 있다가 빠져 나오지 못하고 죽었다는 뉴스도 전해 주었다.
그 때 양 대표는 “참 안타깝지만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라고 생각했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양 대표의 삶의 영역 밖에 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그 날 밤 양 대표는 집에 가서 쉬고 있는데, 사업하기 이전 대기업 생활 하던 때가 떠 올랐다. ‘그때는 내 인생이 참 빡빡하던 때였지. 너무 바쁘고 힘들어 삶이 피폐한 정도였어. 경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회사는 하루 아침에 몇 백 명을 해고했고, 많은 가정이 붕괴되었지. 경기가 좋아져도 회사에서는 인원을 채워주지도 않았구. 결국 이전에 2-3사람이 일하던 것을 나 혼자 하게 되었지. 다시 하라면 못할 일이야.'
양 대표는 비즈니스 현장 가운데 있으면서도 영적인 것에 대한 갈망이 항상 있었다. 대기업 다니며 힘들어하던 그 때에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었다. 양 대표는 오가며 보았던 기독교 사회 복지 기관 같은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그 때 했다. 그날 밤 양 대표의 두 눈에는 장애인들 부모들의 눈물 어린 호소와 이전에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어했던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양대표는 의미 있는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
“지금은 대표님이 찾으시던 가치나 의미를 찾았습니까?"라는 질문에 양 대표는 “네, 찾았습니다. 청밀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사회적 문제를 발견하고, 비즈니스로 해결해 나간다’입니다. 한국 사회에 노인, 장애인들 등 취약계층의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 청밀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비즈니스로 해결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일자리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비즈니스로 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청밀의 성장 과정은 사회적 문제의 발견과 해결의 과정이었다. 식자재유통사업은 대기업 위주, 비싼 가격, 공급자 중심의 식자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하였다. 사회복지시설, 어린이집 등의 거래처에 대형 행사가 있을 때 요리사를 파송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소비자 중심의 식자재 문화를 만들고 있다. 농산물 전처리사업은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시작하였다. 농산물 전처리란 소비자가 조리하기 편하도록 농산물을 세척하고 다듬어 포장하는 작업이다. 공공기관유통, MRO(구매대행)사업은 일반 기업뿐만 아니라 중증 장애인기업 및 여성기업의 상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시작하였다.
청밀은 지금까지 3단계를 거쳐 성장하고 있다. 2008년에서 2012년까지는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 양 대표의 목표였다. 청밀은 청각장애, 발달장애, 지체장애, 다문화가정, 새터민, 어르신 등 다양한 분들을 고용하여 함께 일했다. 이 시기에 양 대표는 사회적 기업은 스스로 생존하여 오랫동안 존속 가능한 기업되어야 한다는 판단했다.
그래서 2013년에서 2016년까지는 성장을 목표로 했다.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로 넘어가야 했다. 이 시기에는 회사의 모든 역량을 쏟아 성장 중심으로 경영 전략, 영업 전략을 세웠다. 그랬더니 2013년부터는 회사 매출이 매년 20% 이상 성장하였다. 초기에 입사했던 직원들 중에는 사회적 기업의 색깔이 약해진 것은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도 생겼다.
두 번의 목표 수정을 거치면서 양 대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회적 기업은 영리와 비영리의 중간 영역이다. 이타성과 배타성이 섞여 있다. 성장은 영리 기업 쪽으로 간다. 일자리는 비영리쪽이다. 사회적 기업의 정체성은 이 둘 사이의 끊임없는 긴장 속에 있다.’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2016년부터는 다시 가치중심의 회사로 초점을 재조정하였다. 양대표는 100년 지속 가능한 기업을 세우길 원했다. 100년 동안 지속 가능 하려면 사회적 기업의 정체성, 기업의 가치를 분명히 가져야 한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에 ‘가인지 캠퍼스’를 만나 가치 경영, 인재 경영, 지식 경영에서 컨설팅 받아 목표와 방향을 더욱 분명하게 할 수 있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묻는 질문에 양 대표는 바로 직원들의 헌신과 전문성이라고 했다. 회사 안에는 유통을 경험한 직원들이 많았다. 양 대표도 25년째 유통업에 종사하고 있는 전문가였다. 인적 자원이 경쟁력이 있어 고객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는 조직으로 만들었다. 일차적으로 수용하도록 하였다.
100년 지속 가능한 청밀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직원들이다. 청밀에서는 신입 직원을 뽑기 위해 ‘의미 채용’을 적용하고 있다. 청밀은 사회적 기업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사람,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 발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협력하고 도전하는 사람을 뽑기 위해 노력한다. 직원이 채용되면 직장인 학교, 팀장스쿨, 피드백코칭 스쿨 등에 위탁하여 교육하고 있다.
취약 계층 직원들 또한 업무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직무 배치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장애인들의 경우 사무실 업무 보다 전처리 작업장에서의 작업에 더욱 적합한 경우도 많았다. 장애가 있는 직원 또한 업무에 대하여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준다. 어떤 직원은 컴퓨터 설치와 관리에 적성을 보이는 직원도 있다. 동일하게 그 분야에서 발전할 수 있도록 교육과 업무를 부여하고 있다.
다양한 직원들과 함께 하는 만큼 보람을 느꼈던 일들도 많았다. 얼마 전에 양 대표의 생일날 있었던 일이었다. 뇌병변 장애를 가진 직원이 커피숍에서 커피를 사왔다. 그 직원은 불편한 몸이었지만 대표님께 드리고 싶었다고 말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양 대표는 그 순간이 오랫동안 누적되어 왔던 피로감을 말끔하게 씻게 한 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성장의 또 한가지 비결이 대기업에 준한 업무 시스템 구축을 빨리 하였다는 점이었다. 청밀은 오래 전에 그룹웨어, ERP, 회계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회사내의 지식들을 누적하고, 지식을 공유하고, 활용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고객들은 청밀에게서 품질에 대한 우수성, CS 대응 능력, 발주에 대한 편의성, 다양한 품목, 사회적 기업으로서 8년간의 한결 같은 모습을 보고 신뢰하게 되었다. 이런 노력은 결국 지속적인 성장으로 이어졌다.
청밀은 식자재의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가격 변동을 관리하기 위하여 다양한 매입처를 확보하고 있다. 다양한 매입처와 신뢰 관계를 유지하여야 가격급등, 물량 부족의 시기에도 안정적으로 식자재를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밀과 매입처와의 신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갑을 관계가 아니라 동반 성장의 관점에서 서로 돕고 있다. 매입처의 매출 부족, 프로모션 제품, 고정 발주가 필요한 식자재, 일정량 이상의 물량 매입이 필요한 제품 등의 문제에 서로 협력하고 있다.
전처리 과정의 핵심은 품질을 일정하게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체계화된 작업 시스템을 통해서 로스율을 최대로 줄이고, 저품질 제품은 걸러 내고 있다. 어떤 고객사는 품질을 중요시 여기고, 어떤 고객사는 양을 중요하게 여긴다. 숙련된 직원들이 이러한 고객사의 특성에 맞게 작업을 과업을 수행하고 있다.
청밀은 회사의 성장을 꾸준하게 사회에 환원하였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청밀이 운영하는 특별한 가게 ‘기빙팩토리’가 있다. 기빙팩토리는 다양한 기업에서 후원받은 새 상품을 판매하며 운영비를 제외한 수익금은 국내외 장애 아동과 소외계층을 위한 복지사업에 사용하는 가게이다.
또한 청밀은 열심히 공부하는 취약계층 학생들을 위하여 장학금을 매월 일정 금액을 후원하고 있다. 그 중에 한 명이 힘든 사람들을 돕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연대 의대를 진학했다. 양 대표는 그를 통해서 청밀의 가치가 더욱 퍼지길 기대한다. 희귀 난치병 환자의 수술을 지원하여 건강하게 회복 되는 모습도 보았다. 발달 장애를 가진 직원을 채용하여 그 가정이 재정적으로 안정이 되는 것도 보았다. 양 대표는 회사를 통하여 연약한 사람들이 성장하고, 그들의 삶이 건강하고 행복할 때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양 대표는 청밀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물었을 때, “청밀이 100년 동안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만드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청밀이 앞으로도 잘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일터를 만들어 직원들이 회사를 다니는 것이 행복하도록 만들려고 합니다. 이런 꿈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까지 전파되길 원합니다. 아프리카 케냐에 ‘청밀 인터내셔널’이라는 작은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그 지역 사람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일자리입니다. 청밀 인터내셔널을 통해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베이커리 가게를 할 수 있도록 설립,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도움을 주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주어야 다른 문제들이 해결됩니다. 케냐에도 100년 동안 지속 가능한 회사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적 기업을 경영하려는 후배 경영자에게 양 대표는 “하나님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으십니다. 청밀에는 연약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점을 좋게 보셔서 청밀을 놀랍게 성장시키셨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성장하려면 하나님이 애틋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섬기면 됩니다. 하나님이 관심 있는 사람들을 도우세요. 상처가 있는 사람들, 약한 사람들을 도우세요. 그 기업은 하나님께서 성장시키십니다. 동시에 사업 모델, 수익 모델을 분명하게 잡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적 기업이라 할지라도 영세성을 벗어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어떤 기업가는 돈을 많이 벌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착각입니다. 돈을 벌어야 기업이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고, 약한 사람들을 고용도 할 수 있습니다. 약자를 돕는다는 시대 정신과 수익 모델 두 가지가 모두 있어야 합니다. 직원으로 장애인들만 고집할 필요도 없습니다. 취약계층 직원을 30% 이상으로 하되, 직무에 적합한 사람들을 뽑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경영은 단순히 약한 사람들을 고용하겠다는 선한 마음 그 이상이 필요합니다. 사회적 기업이 많아지고 경쟁력을 높혀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