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전 계획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해 나가는 '애자일(Agile)' 전략을 실제로 도입한 기업들이 의사결정과 업무속도가 빨라지고 구성원들의 창의력이 잘 발휘되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생명보험 회사인 오렌지라이프는 6~9명 정도 되는 팀원들이 매일 아침 사무실 한쪽에 있는 화이트보드 앞에 모여 15분간 그날의 업무 내용을 공유한다. 보드에 붙은 포스트잇에는 직원들이 그날 해야 하는 업무 내용이 적혀 있다. 주변에는 파워포인트(PPT)로 만들어진 두꺼운 보고서도, 서류를 올려두는 테이블도 없다. 심지어 앉을 의자도 없다. 최고경영자(CEO)와 경영진 회의 시간 역시 예외 없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오렌지라이프는 이와같은 애자일 전략으로 조직 문화를 혁신했다. 애자일 도입 1년 반이 된 지금 직원들은 업무 수행 방식에서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오렌지라이프 한 직원은 “예전에는 기획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하면 먼저 PPT부터 열고 어떻게 하면 상사에게 통과되는 기획안을 쓸지 고민했다”며 “애자일 도입 이후 보고서 중심의 문화가 사라졌고 해당 업무 전문가인 내가 성과를 가장 잘 낼 방법을 먼저 고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오렌지라이프는 하다가 안 되면 그만둘 수 있는 파일럿 개념이 아니라 반드시 도입하겠다는 일념으로 애자일을 도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존 일하던 사무 공간에 스쿼드(애자일 그룹의 소그룹)로 테스트런 팀을 시험 삼아 설치한 결과, 다른 직원들이 테스트런 팀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애자일 문화를 자연스럽게 학습할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렌지라이프 관계자는 "오랫동안 고수해 온 기업의 체질을 바꾸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인트라넷과 타운홀 등을 통해 임직원의 변화 관리에도 공을 들였다"며 "테스트런과 투명한 콘셉트가 오렌지라이프에 애자일 문화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는 차별화 포인트가 됐다"고 말했다.
엔지니어·디자이너·프로그래머 등 다함께 모여 프로젝트 종류·진행 방식을 자유롭게 정하기도…"각 애자일 조직 결정권 존중하고, 일정과 성과 등 독촉해서는 안돼"
애자일 전략의 성공적인 도입으로 단기간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사례도 있다.
다니엘 에크(Daniel Ek) 창립자가 스웨덴에서 2008년에 창업한 '스포티파이'는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업체로, 현재 세계 81개 나라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2억700만 명에 달하는 가입자 중 절반에 가까운 9600만 명이 유료 고객일 만큼 소비자 충성도가 높은 기업이다.

스포티파이 내 업무조직은 최소 단위인 '스쿼드(Squad)'부터 시작된다. 스쿼드엔 엔지니어,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 여러 업무 담당자가 모여있다. 스쿼드는 하나의 스타트업처럼 프로젝트 종류와 진행 방식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비슷한 업무를 맡은 스쿼드가 여러 개 모이면 '트라이브(Tribe)'를 이룬다. 보통 트라이브는 100명 이내로 구성된다. 한 트라이브 안에서 같은 직군의 직원끼리는 일종의 기술 교류 모임인 '챕터(Chapter)'를 형성한다. 각 스쿼드에서 신제품 프로젝트를 운영하다 마케팅 아이디어가 고갈되면, 트라이브 내 마케터들끼리 한자리에 모여 아이디어를 나누고 그 결과를 각자 자기 스쿼드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스포티파이는 이렇게 프로젝트 진행에 따라 구성원들이 빠르게 뭉쳤다가 흩어지는 애자일 조직 구조를 통해 구성원이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했다. 그 결과 약 10년 정도의 비교적 빠른 시간안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평가다.
물론 애자일이 한번 휘두른다고 기업에 혁신을 가져오는 요술 지팡이는 아니다. 충분한 고민과 준비가 없다면 오히려 도입하기 전보다 업무 능률이 떨어질 수도 있다. 성공적인 애자일 전략 적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애자일 소조직은 사내 다른 조직의 도움 없이 맡은 프로젝트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국내 한 애자일 전략 전문가는 "기획자, 개발자, 마케터, 세일즈맨 등 여러 직무자들이 한 팀에 속해 긴밀하게 협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성공적인 애자일 조직 정착을 위해선 조직 문화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애자일 전문가는 "각 애자일 조직의 자체 결정권을 존중하고, 업무 일정 또는 성과를 독촉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