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봐도 이익의 10퍼센트를 가져가는 것이 공정하고, 심지어 11퍼센트를 가져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위해 9퍼센트만 갖도록 하라'…리자청의 '10-11-9법칙'
세계에서 가장 먼저 에베레스트를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는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에 오르고도 늘 겸손했고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힐러리와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 중 '실제로 누가 먼저 정상을 밟았는가'는 오랜 미스터리였다. 힐러리가 하산할 때 가지고 내려온 사진은 텐징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서 있는 모습뿐이었고 정작 자신의 사진은 없었다. 힐러리는 정상에서 텐징의 사진만 찍고 자신의 사진을 찍기는 한사코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는 굳이 '내가 세계 최초'라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누가 먼저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는지 묻는 말에 대해선 오랫동안 '우리가 함께 올랐다'라고 말해왔다.
텐징이 숨진 후 13년 뒤인 1986년에야 힐러리가 3미터쯤 앞서 정상을 밟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그것은 노르가이가 정상 바로 밑에서 힐러리를 30분이나 기다렸다가 그에게 첫 정상을 밟을 기회를 양보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힐러리는 힐러리대로 인간에 대한 배려와 예의를 지켰고 텐징은 끝까지 셰르파로서의 자세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힐러리는 죽을 때까지 '나는 텐징과 함께 에베레스트를 올랐다'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세계 최고봉 첫 등정의 영광을 목숨 걸고 자신과 함께한 셰르파와 공유했다. 그들에게는 진정한 명예, 그리고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의 정신이 있었다. 이들에게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는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등로주의, 정상까지의 길을 누구와 어떻게 걸었는가
등반 사조 중에는 '등정주의'와 '등로주의' 두 가지가 있다. 등정주의는 어떤 방식이든 정상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는 과거의 전통적인 등반 사조다. 반면 등로주의는 정상에 올랐다는 결과보다는 역경을 극복하며 힘든 루트를 직접 개척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조다. 히말랴야의 난봉들이 모두 등정되자 등정주의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등로주의가 현대 등반 사조로 정착되고 있다. 정상에 오르기는 분명 쉽지 않은 일이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상에만 서면 된다는 생각보다는 남을 위해 길을 내며 간다는 것이 더 소중한 의미로 자리 잡았다.
남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 그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남을 먼저 생각하느라 자신의 가장 귀한 것도 돌보지 못했던 위대한 사람들 덕분에 지금 우리가 이처럼 편하게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겉으로는 세상을 등지고 혼자의 힘으로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사실은 누군가의 도움과 사랑 아래 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독일의 반나치 신학자였던 마르틴 니묄러가 나치 독재 아래 선한 독일인들이 타인의 생명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음을 꼬집는 말이다. 남의 어려움을 나 몰라라하고 자신의 안녕과 평안만 추구한다면 자신을 위해 헌신할 사람은 없어진다.

리자청의 '10-11-9 법칙'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원칙은 돈을 버는 비즈니스 사회에서도 필요하다. 아시아 최고 갑부였던 리자청은 항상 '10-11-9의 법칙'을 강조했다. '남이 봐도 이익의 10퍼센트를 가져가는 것이 공정하고, 심지어 11퍼센트를 가져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위해 9퍼센트만 갖도록 하라'는 것이다. 기업들도 이런 생각으로 사회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때 모두가 한결 잘살 수 있다.
목소리 큰 사람, 똑똑한 사람은 많지만 사람 향기가 나는 사람, 남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세상은 전쟁터가 된 지 오래다. 존 맥스웰의 말처럼 '성공의 척도는 자신을 섬기는 사람의 수가 아니라 자신이 섬기는 사람의 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점을 인정하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다.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보다 남들도 함께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묵묵히 길을 내면서 가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더 좋은 세상을 원한다면 자신부터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남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덕은 어느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 삶을 통해 갈고 닦아야 지닐 수 있는 것이다.
글. 이주형 (후성그룹 HR Direc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