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분은 대기업에 재직하였고, 지금은 강사와 컨설팅을 하고 있다. 그와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코칭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면서 그가 나에게 물었다.
“기업에서 코칭이 왜 필요한가요?”

내가 생각하는 필요성에 대해서 그에게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하지만, 그는 만족하지 못한 눈치다. 왜냐하면 코칭은 시간과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코칭은 조그만 변화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상대적으로 많이 투자한다. 한마디로 ROI(투자대비 효과)가 떨어진다는 말이다. 교육이나 컨설팅은 짧은 시간에 많은 내용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창의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하지만 코칭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그의 표현이다. 마침 이날 저녁, 이분의 강연에 참관하게 되었다. 강연이 한창 진행되었을 무렵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대기업에서 혁신 팀장을 하면서 수많은 팀과 조직의 비전을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나의 비전은 세우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땐 그렇게 필요성을 많이 느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목표와 비전을 세웠습니다.”
그러면서 비전을 세울 수 있었던 핵심적인 비결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도구’의 문제라는 것이다. 도구가 효과적이지 않으면 비전을 세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과연 도구만의 문제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변화할 때는 단계가 있다. Lewin의 계획적 변화모델은 “해빙→이동→재동결”이라는 과정을 지난다고 했다.

사람이 변할 때는 제일 먼저 해빙부터 되어야 한다. 사각형 얼음을 육각형 얼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녹여야 한다. 녹이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없다. 이렇게 녹인 얼음으로 육각형 틀에 맞도록 이동해야 한다. 육각형 틀에 놔두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다시 얼려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육각형 얼음이 된다. 재동결하는 과정은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통해 습관이 되는 과정을 말한다. 이 세 가지 과정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해빙이다. 녹여야 어떤 형태든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에게 있어서 해빙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우리의 눈은 외부로 향해 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을 때 흔히 ‘철이 들었다’는 말을 듣는다. 다른 사람 눈에 좋아 보이는 비전도 자신에게 쓸모 없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봤을 때 형편없는 것도 당사자에게는 소중한 꿈일 수 있다. 꿈이나 비전은 나의 손길이 묻어있어야 한다. 손길이 묻어 있다는 것은 내면에서 찾아야 하고 그 속에서 나와야 한다는 뜻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는데 자꾸 외부 목표만 좇다 보면 허무해 질 수 있다. 목표라고 생각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이 길이 과연 맞는지 의구심이 자꾸 든다면 자신을 되돌아 봐야 한다. 자신을 되돌아 봐야 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 이때가 바로 ‘해빙’이 된 것이다.

나를 프로그래머에서 코치로 삶을 바꾸어준 질문이 있다. 그것은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였다. 이 질문은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었고 무엇을 할 때 즐겁고 행복한지 고민하게 하였다.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3개월 넘게 삶을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 길을 어렴풋이 찾게 되었다.
아프리카 속담에 “내가 어디로 갈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가 어디서 온지는 안다”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어디로 갈지 알고 싶다면, 어디서 왔는지 먼저 발견해야 한다.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 어디로 갈지 알기 어렵다.
기업은 비전을 세우기 이전에 조직의 핵심가치와 사명을 먼저 규정한다. 이유는 기업의 정체성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전은 허공에 떠 있는 라퓨타(걸리버 여행기의 하늘에 떠 있는 섬) 같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목표만 세운다면 건물을 세우기만 하고 땅은 견고하게 다듬지 않은 것과 같다. 견고하게 땅을 다듬지 않으면 건물은 무너져 내릴 수 밖에 없다. 나 스스로의 삶을 살지 못하게 된다. 기초를 튼튼히 하는 것은 나를 돌아보는 것이고 기업의 정체성을 세우는 일이다. 해빙은 스스로의 모습을 찾는 과정이다.

코칭이 오랜 시간에 걸쳐 비효율적인 것처럼 진행되지만 궁극적으로 고객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내면의 모습을 통해 어디로 가야하고,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알도록 도와준다. 해빙은 내면을 바라볼 때 가능하다. 해빙을 위해 코치가 하는 역할은 거울이 되어주는 것이다. 깨끗한 거울로 고객의 모습을 비춰주면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혁신팀장으로 있으면서 자신의 비전을 세우지 못했던 그 분도 해빙이 되질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해빙이 된다. 그러면 어디로 갈지 방향이 정해진다. 그리고, 이를 통해 조직문화와 개인의 습관으로 재동결시켜야 한다.
모든 목표는 기업의 내부, 개인은 자신의 내면을 거쳐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좌표를 가지고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
글. 이동운 대표 (본코칭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