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스토리를 나누고자 한다. 필자는 경영학과를 다니던 90년대 초반 대학 시절, 비즈니스를 통해 복음을 전하겠다고 결심 했다. ROTC로 군복무를 마치고, 다음날 E기업에 입사를 했다. 대학시절의 결심을 구체화 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5년후에는 좀 더 구체적인 선교기업을 만들어 보고자, 선배들과 함께 M 컨설팅 회사를 창업했다. 이후 30대 중반을 넘어, 가장 왕성한 역량으로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선교지로 건너 왔다.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땅은 소위 창의적 접근 지역이다. 이슬람 국가이다.
이 땅으로 파송되었을 때가 나의 리즈시절(전성기를 뜻하는 신조어)이었을 것이다. 경영학부와 MBA에서 쌓은 이론과, 나이에 비해 많은 경험을 통해 얻은 실무지식이 최고조에 이른 때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땅에서 나는 초라한 이방인일 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2010년에 오픈한 한류카페. 한국 음식과 커피를 파는 이 곳에서 나는 한국 음식을, 아내는 커피를 담당했다. 주방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2011년은 철저한 광야였다.함께 일하던 사람들도 초자연적으로 그만 두고 사라졌다.
끝내 아내의 건강에 문제가 생겨 급한 수술을 받게 되었다. 덩그러니 카페에 혼자 일해야 하는 날이 하루 하루 지나갔다.
사람, 사람, 사람! 인재, 인재, 인재!
부르짖어 구했다. 함께 이 나라의 일터에 상륙작전을 수행할 인재를 구하는 것에 모든 초점을 맞추었다. 아내는 수술 후 스트레스와 체력 저하로 이석증까지 발병했다. 비참했다. 하지만, 인재는 없었다. 성경적 경영은 커녕, 생존과 건강조차 위협받던 시기였다. 서러움을 삼키며 홀로 400개가 넘는 만두를 밤11시까지 만들고 집에 돌아가던 어느날이었다. 처량한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속에 주님이 찾아 오셨다. ‘인재, 인재, 인재…’ 주문을 외우 듯 기도하던 내 마음에 이런 하나님의 속삭임이 있는 듯 했다.
‘창선아, 너는 왜 그렇게 사람을 구하니? 나를 좀 더 구하면 안 되겠니?’
작은 속삭임은 내 영혼을 천둥과 같이 흔들어 놓았다. 그분이 나의 시점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함께 카페를 운영할 ‘인재’를 구했지만, 하나님은 그 분의 ‘임재’를 구하기 원하셨다. 이 날부터 3평 남짓한 내 주방은 ‘主房 주님의 방’이 되었다. 주방에서 주님의 임재를 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 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역대하 20:15 후반절>
하나님의 용병술은 ‘인재’보다 ‘임재’에 있다.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기 때문이다. 일터에서의 전쟁은 ‘인재’를 구하기 전에 ‘임재’를 구해야 한다. 일터에서의 승리는 ‘매출상승’이나 ‘수익극대화’에서 멈춰서지 않는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머무르기 위해 몸부림 쳐야 한다. 일터 가운데 종교적 행위를 끊임없이 하라는 것
당신은 ‘일터 예배자’이다. 이 아니다. 신우회 예배나, 크리스찬 기업의 월요모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Doing(행위)보다 Being(존재)자체가 더 중요하다. 일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드러내는 ‘예배자’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이슬람 국가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일터 예배자’로 서 있다.
‘인재경영’ 이전에 ‘임재경영’으로 하나님의 일터 상륙작전에 참여하고 있다.
글. 마창선 (BAMer, 셰프, BH컨설팅 전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