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뜨거운 여름, 서울 근교의 한 교차로에서 가벼운 접촉 사고가 났다. 두 운전자가 내렸고,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이런 말을 주고 받는다.
“그런데 당신 몇 살이야?”
“먹을 만큼 먹었다. 왜?”
나이는 사람이나 동.식물 따위가 세상에 나서 살아온 햇수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나이는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이에 따라서 호칭이 달라지고 말투도 달라진다. 직급이나 직책이 있는 경우 그것이 나이를 대신한다. 어떻게든 부를 호칭을 찾아야 비로소 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호칭에 따라서 관계가 설정되는 언어문화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김경민 대표, 센터장, 부장, 교수, 실장, 집사가 아닌 그냥 ‘김경민’으로 불릴 수는 없는 것일까?

조직의 리더는 모든 멤버가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그 과정에서 주도성과 만족감을 느끼기 원한다. 단순히 시키는 일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기회를 창출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서 자신의 잠재력과 창의성을 발휘하기 원하는 것이다.
조직에 일하는 모든 멤버들 역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며 즐겁게 일하기를 원한다. 자신이 속한 조직 내에서 무엇인가 의미 잇는 일을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일하고 싶어한다. 이른바 ‘자기효능감’이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고 확신한 일을 수행할 때 주도적이 되고 결과에 대한 책임성을 갖는다.

인류는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역사를 발전시켜 왔다. 중세와 근대를 거치면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민주주의가 꽃을 피웠고 그 결과 지금 우리는 최소한 제도적으로는 우리 사회에 관한 대부분의 의사결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 조직은 어떠한가? 여전히 상명하복의 문화가 강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의 대부분을 상사가 결정 해주는 경우가 많은 직장 문화 속에 살고 있다. 이른바 ‘시키는 대로 하라’는 인식이 여전히 많은 것이다. 조직내에 의사소통의 흐름은 더 심각하다. 대부분의 이야기를 상사가 하고 가르치듯 일을 시키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현장에 대해서 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실행자의 의견이 충분히 표현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소통 스킬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든 조직문화에서 오는 것이든 결과적으로 이러한 조직 내의 의사소통 부족의 문제는 조직 성과 뿐 아니라 조직원들의 역량 향상이나 만족도와도 직결된다.

다양한 호칭은 관계를 규정하고 서로에 대한 역할까지 규정한다.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회사의 문화를 가져가고 싶다면 회사 내에서 이러한 호칭과 직책에 따른 ‘역할제약’을 극복해야 한다. 조직 내에서 ‘나이’와 ‘직급’을 잊어버리는 것은 어떨까? 제도적 직급과 직책 제도를 버리는 것은 부작용이 아직 많다면 최소한 호칭에서 나이와 직급, 직책을 버려 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 조직에서는 몇 년 전부터 직급호칭을 버리고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다. 이런 문화 속에서 자신의 잠재력과 창의성을 언어와 제도적 제약 없이 펼칠 것이 기대된다.
나이와 직급, 그리고 직책이 주는 안정감에서 벗어나자. 그리고 나를 불러주는 호칭에 대한 미련을 버리자. 비로소 조직의 모든 구성원들이 좀 더 책임과 참여 속에서 자기 주도성을 가진 활발한 토론과 의사소통이 가능 할 것이다.
글. 김경민 (바른경영실천연합 대표)